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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 채승훈
 
세상의 참 모습은 근본적으로 코스모스(cosmos)가 아닌 카오스(chaos)로 인식한 것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연출가의 시선과 그것을 담아내는 연극적 표현 방법이 오롯이 투영된 결과인 것이다..


오티알 인터뷰 - 연출가 채승훈

일자 : 2015년 3월 28일
장소 : 카페 장


채승훈 / 사진=OTR

채승훈 연출가(수원대학교 교수, 극단 창파 대표)가 여타의 다른 아방가르드 연출가들보다 유별나게 자주 훼손된 몸을 현현시키는 것은 부조리극 작가들이 세상의 참 모습은 근본적으로 코스모스(cosmos)가 아닌 카오스(chaos)로 인식한 것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연출가의 시선과 그것을 담아내는 연극적 표현 방법이 오롯이 투영된 결과인 것이다. 즉 세상의 참 모습은 즐겁고 행복하지 않은데, 재현에 치중한 연극은 세상이 즐겁고 행복하다는 일종의 환상을 주는 것에 대한 심한 혐오감을 갖고 있다. 문밖에까지 시체 썩는 냄새가 나도 나만 닫고 있으면 된다는 생각에 애써 불안감을 멀리하려는 의식을 깨부수려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생각하는 연극은 보편적인 표현 연극 문법을 가지고 관객들을 즐겁게 하거나 길들이는 것에서 탈피하여 관객들이 심히 불쾌해하는 훼손된 몸을 정면에 거울을 들이대듯이 강렬하게 투영하여 관객과 몸적 공유를 이룸으로써 즉각적인 신경적 반응을 이끌어내고자 한 것이다.

그는 작품을 통한 세상의 변혁 못지않게, 부조리한 연극적 환경과 사회 환경에 정면에 맞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데 있어 주저함이 없다. 오티알은 이신영 연출가(성결대학교 조교수, 극단 노을 대표)와 채승훈 연출가의 대담을 기획하였다. 대담을 통해 채승훈 연출가가 생각하는 연극정신과 연출문법, 그리고 예술인의 사회 참여 등에 대해 알아보고자 하였다.


이신영 / 사진=OTR

이신영(이하 이) : 선생님 안녕하세요! 가벼운 질문부터 하고자 합니다. 선생님이 연극을 처음 하겠다고 영향을 받은 요소나 계기가 있을까요?

채승훈(이하 채) : 어린 시절, 종로구 청운동 근처에 살았는데, 초등학교 4학년쯤 하루는 청와대 뒷산 (지금은 일반인들이 못 들어가지만 그때에는 들어갔음) 으로 보리수 열매를 따먹는다고 놀러갔다가 숲속에서 고등학교 남녀 학생들이 연극연습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깜짝 놀랄 만큼 흥미로웠습니다. 그 이후 거의 매일 연습하는 거 구경하러 다녔고, 연극하던 그 형들 하고도 친해졌지요. 그 이후 연극에 관심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었고 어린 나이에 지금의 명동예술극장 등으로 연극구경도 다니고 했습니다. 돌이켜보니 그날 산에 놀러갔던 것이 못된? 운명이었던 같습니다만.

이 : 요즘 주류를 이루는 연극에 대한 선생님의 평가와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좋은 연극이란 무엇인가요?

채 : 어려운 질문이네요. 난 솔직히 말해 요새의 주류연극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별로 생각해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조금 생각해본다면, 주류연극이란 관객과의 관계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일 것 같아요. 어느 장르건 주류라 함은 보편성, 대중성 등을 겸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관객이 좋아해 주는 연극들이 주류를 이루게 되는 것은 당연하며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연극도 관객이 없으면 생존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내가 주류연극을 잘 모르니 그것을 구체적으로 평가하기는 그렇습니다. 저는 어느 시점부터인가 그런 생각들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좋은 연극이란, 그것도 참 말하기 그렇지만 그래도 구태여 하자면 타성에 젖지 않은 연극, 실험적 도발성이 있는 연극 등입니다. 

이 : 선생님께서는 특히 연기자의 몸을 제1의 연극언어로 활용하고 있는데요. 이에 대한 선생님의 연출 작업 전반에 대해서 말씀해주십시오. 

채 : 몸을 연극언어로 생각한 것은 나만의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20세기 중후반 들어 세계연극은 몸이나 다른 표현 방법을 많이 생각해왔습니다. 그전까지는 음성언어에 비해 몸이나 소리, 빛, 소품, 물체 등을 이용하는 것은 거의 미미하였습니다. 그와 더불어 음성언어로 발전되어온 세계문명이 불균형, 불합리한 세계로 인류를 이끄는 것은 아니가하는 우려가 제기 되었는데, 혹시라도 몸의 언어 등으로 표현하는 것이 문명발전의 균형을 이루어 주는데 도움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비롯되었고, 나도 변방에서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리고 흥미롭지 않은가요? 나는 특히 몸 중에서도 자연스러운 몸이 아니라 억압받는 몸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존의 질서, 권력, 고정 관념 등에 의해 침탈당한 수많은 희생자들에 대한 표현은 기존의 음성언어로는 그 표현이 부족할 수 있다고 봅니다. 아니 엄밀히 얘기해서 불가능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언어로 만들어진 문명적 권력에 의해 그들이 희생당한 것이니까 말이죠.

그렇지만 나는 몸의 언어에만 의도적으로 기대는 연출가는 아닙니다. 그런 태도는 형식을 우선하는 스타일리스트를 만든다고 봐요. 나는 그런 스타일리스트는 거부합니다. 역사의 부정성에 대해서 관심이 많기에 그것들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여러 다른 표현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또한 기존의 방법들을 타성적으로 사용하는 것에도 반대합니다. 그게 기존의 것에 저항한다는 사상에 맞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저의 연극은 항상 실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연출론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생각만큼 쉬운 것이 아님을 매번 느끼고 있습니다.     

이 : 연기자의 훼손된 몸을 현현(顯現)시킨 연출가들은 우리 몸 깊숙이 침잠해있는 체재 순응적이며 안정적인 것들이 인간 의식을 마비시키고 있음을 인지하고, 이러한 익숙한 것들을 의도적으로 부수는 작업을 통해 기존의 안정적인 감각이 뒤틀리고 해체되어서 결국 의식의 확장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였습니다. 

이러한 훼손된 몸의 현현은 특히 선생님의 작품에서 가장 잘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선생님 작품의 일관된 주제는 ‘부패된 역사의 상기’에 있습니다. 즉 잘못된 역사, 수직구조의 역사, 소수의 특권층에서 만들어놓은 필연성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류의 잘못된 구조,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는 시대의 부조리를 중심에서 빗겨나가지 않고 직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죠. 그런 이유로 무대에서 존재하는 연기자의 모습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기대하는 심미적인 아름다움이란 찾을 수 없으며, 꿈속에서라도 상상조차 하기 힘든 매우 끔찍하고 섬뜩한 훼손된 몸을 현현시킴으로써 관객과 몸적 공유를 이루어 즉각적인 신경적 반응을 촉발시키고자 한 의도가 보입니다. 특별히 아르또의 잔혹극처럼 선생님 작품에서도 잔혹하고 폭력적인 장면이 자주 나타나는데요. 그러한 의도는 무엇입니까?

세상이 잔혹하니까 거기에 저항하는 언어도 그래야 될 것이라고 보는 거지요. 마치 까뮈가 말한 부조리의 인간? 부조리한 세계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부조리한 삶이라는 것? 비슷한 것 같은데요. 

그러나 작업 초기와는 다르게 관객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이 많이 달라지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견해를 말씀해주십시오.

채 : 달라졌습니다. 그건 당연한 것 아닐까요. 나이를 먹어가면서 세상에 대해서 혹은 주변 인간들에 대해서 새롭게 느끼는 것이 많아집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자연스럽게 변하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가장 본질적인 것, 나의 연극이 어떻게 세상과 대면해야 하는지는 거의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가끔 내 자신이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이 : 선생님의 대표 작품인《햄릿》과 《푸른 관 속에 잠긴 붉은 여인숙》등의 공통된 주제는 부패한 역사의 상기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역사 인식과, 특히 희생의 대상으로 여성의 몸을 부각시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채 :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얘기한 것입니다만, 지나온 인간들이 이룩한 문명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공헌해 오지 않았다고 봅니다. 지난 역사는 그저 이긴 자들의 자기 합리화일 뿐이라는 것이지요. 수많은 질곡의 역사 속에서 그들은 그들과 똑같은 사람들을 수도 없이 희생시켜왔습니다. 그럼에도 이긴 자들은 (이긴 자라는 표현도 안 맞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희생자들은 그들과 싸우려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들만의 아성을 구축해 놓고 전리품들을 즐기기만 합니다. 그리고 그들 자신에 대한 칭송만을 늘어놓습니다. 예술이 멋도 모르고 그에 편승하기도 하지요. 나는 그냥 그들의 손에 희생당하고 주검으로 팽개쳐진, 그리고도 아무런 기록 한 줄 남기지 못한 그들에 대해서 미력하나마 그려보고자 하는 것뿐입니다. 차가운 땅속에서 제대로 몸을 펴지도 못한 상태로 버려진 그들의 몸을 무대 위에서만이라도 바로 펴주기라도 해주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입니다. 그래서 비틀어진 몸을 표현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성은 희생의 극상징이지요. 희생자들의 가장 밑바닥의 위치에 여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 선생님께서는 작품 활동 외에 연극 환경 개선을 위한 ‘대학로포럼’ 등 대외적인 활동도 활발히 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이유와 연극인의 정치적 참여에 대한 선생님의 견해를 말씀해주십시오.

채 : 자기가 속한 사회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소박한 생각입니다. 각자 처한 환경에 따라 할 수 있는 만큼은 그래야 되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가 목숨줄을 이어가는 연극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조금이라도 의견을 내야한다고 보는 거지요. 그래서 우리가 속한 연극계가 조금이라도 합리적이고 풍요로운 길로 나갈 수 있도록 애를 쓰는 겁니다. 그 것 뿐입니다.

이 : 요즘 한참 이슈가 되고 있는데요. 아르코 예술극장, 한팩 극장 등의 설립 계기와 더불어 대학로연극의 역사에 대해서 한 말씀해주시죠?

채 : 아르코 극장들이야 잘 알다시피 80년대 초에 다른 지역에 있던 연극인회관이 대학로로 자리 잡게 된 계기가 있고요, 대학로 예술극장 대, 소극장은 지난 2004년도 경에 원래 한화 주차장 자리를 연극인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든 것이지요. 2004년 당시 제가 서울연극협회 초대회장을 맡고 있었는데 한화 주차장 자리를 연극인들을 위한 극장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저희의 공약이었어요. 협회장이 되어서 알아보니 이미 그 공간이 토건회사에 팔려서 7층짜리 쇼핑몰로 공사 중에 있었지요. 그러던 것을 당시의 문광부, 문화예술위원회 측과 협력해서 그것을 다시 극장으로 환원하게 된 것이지요. 저희는 당시의 문광부 김영산 과장, 문화예술위의 한기천 실장 두 분께 지금도 고맙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허심탄회하게 도와 주셨어요.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때 이미 쇼핑몰로 공사가 많이 진전이 되고 분양까지도 마친 곳들이 있어서 결국 현재와 같이 약간 기형적인 모습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거기에 극장을 꼭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대학로가 나날이 상업화, 유흥화, 황폐화 되어 가고 있어서 아르코 극장만으로는 공공극장의 역할이 좀 부족하겠다 싶었지요. 그래서 대학로예술극장을 설립하면 대학로 연극의 신선한 허브구실을 해주지 않을까하는 기대의 의미에서 그렇게 추진한 것이지요. 당연히 대학로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비상업적 민간극단들이 거기서 많이 활동하기를 바라면서 말이지요. 그러던 것이 어찌어찌해서 한팩으로 묶이게 된 것이고, 독립법인 형태로 운영되어 왔다가 현재 다시 문화예술위원회 소속으로 운영방식이 계속 변하게 된 것이지요. 어찌되었든 설립당시의 취지 즉, 공공성, 예술성 등을 담보하고 민간극단들에게 다양하고 많은 기회를 주는 극장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어느 공공극장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정부쪽에서는 지원을 하되 간섭하지 않고, 수익률 퍼센트를 최대한 낮추어주어 공공극장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밀어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하나 덧붙이자면 임원 임명을 예술계 단체답게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낙하산 인사로 운영자를 임명하는 것은 연극인 모두를 무시하는 행태로 미개한 나라에서나 하는 짓이라고 봅니다.

이 : 연극의 위기가 아니었던 때는 없었지만, 오늘날만큼 연극이 힘든 시기도 없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선 여러 차례 지면을 통해서 연극의 위기, 연출의 위기 등을 언급해오셨는데, 이 시대 살아남기 위한 연극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채 : 비상업적 동인제 정신의 부활입니다. 가난한 연극이 지속적으로 존중받고 생산되어져야 합니다. 그것만이 연극을 연극답게 생존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이 : 그러한 것이 연극인에게만 짐을 지우는 것은 좀 불합리한 것 같고 정부나 지자체의 역할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이에 대해서도 한 말씀해주시죠?

채 : 선거 때만 되면 문화예술 발전을 항상 외칩니다. 그러나 항상 그 때 뿐입니다. 지금 정권도 문화융성을 외치고 있지만 아직 가시화 된 것은 없습니다. 말로만이 아닌 실천적인 정책구현이 중요합니다.
또한 예술계의 독립성을 존중하고 지켜줘야 합니다. 만만한 게 예술계입니다. 정권이나 선거 때 하수인 역할을 하던 사람들을 아무런 능력 검증 없이 낙하산으로 임명합니다. 가장 큰 문제입니다. 능력 있는 훌륭한 인적 자원이 연극계의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무능력하기 그지없는 사람이 단체장 등의 책임을 맡아서 어려운 연극계를 도리어 후퇴시키는 모양을 간혹 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땅을 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극단에 지원되는 직접지원금이 늘어나야 합니다. 근 10년째 그대로입니다. 간접지원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비상업적 극단들의 창작을 위한 직접지원금이 우선되어져야 합니다. 공공극장, 기업운영극장, 자본력을 내세운 상업적 연극들에 치우치는 연극계 구조는 결국 연극을 보이지 않는 힘에 종속시키고, 창작력을 저하시키며 결국 연극문화의 자연스러운 발전을 저해할 것입니다.  

이 : 선생님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말씀해주십시오

채 : 계속 공연하는 것이지요. 앞으로는 더욱 더 하고 싶은 공연을 할 것입니다. 저예산으로 하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찾아봐야지요.

저희 극단은 지난 십수년간 국내도 국내지만 국외 활동도 꽤 했습니다. 특히 동유럽 쪽으로는 우리 연극계 중에서 가장 먼저 많은 국제공연을 했습니다. 올해도 그쪽으로 공연을 갈 예정입니다. 주로 아방가르드한 작품들입니다. 저는 앞으로 그런 방향으로 내가 하고 싶은 공연들을 하면서 연극 활동을 해나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지역연극, 내가 사는 동네에서 연극과는 거의 담을 쌓고 살았던 지역시민들을 위해 공연활동을 해 보는 게 희망입니다.  

이 : 마지막으로 연극인들에게 선배로서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채 : 나도 우왕좌왕하는데, 무슨 후배들에게 할 말이 있을까요? 그냥 다들 자신의 연극 열심히 하라는 말 밖에는 말입니다.

대담에 임해주신 두 분 연출가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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