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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0)수원 고색동 큰말 코잡이 도당굿
이름 이주영 작성일 2003-09-29
1. 유래와 현황

수원역에서 지하차도를 지나 발안, 남양 가는 길로 나가면 고색동이 나타난다. 지금은 8,000여 세대가 살고 있는 큰 마을이지만 40~50년 전만 하여도 큰말에 150호 정도, 작은말에 70호, 중봇뜰(洑가 있었다고 해서)에 30호 정도가 살고 있어서 250여 호가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전형적인 농촌마을 이었다. 원래 고색동 지역은 바닷가 마을이었는데 바닷물이 밀어 닥쳐서 주민들이 물을 피해 이주를 했다가 다시 돌아왔다고 해서〈古索〉이라는 지명이 유래한다고 한다. 마을에서 전하는 말에 의하면 옛날의 고색동은 바닷가에 있어서 풍어굿으로 행해지던 도당굿이 차츰 육지가 되면서 농사를 주로 짓게 되자 풍농과 마을의 안녕을 위해서 도당굿의 성격으로 변했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마을에는 솔대백이 나무라고 부르는 전나무 네 그루가 있었는데 그 나무가 바닷가에 서 있었기 때문에 소금에 절어서 비가 오려고 하면 나무가 젖어서 하얗게 소금이 배여 나왔다고도 한다.

이러한 고색동의 도당은 현재는 고색초등학교 앞 육교 맞은편에 덕성공업사 뒤편에 위치하고 있지만 원래는 수인선 협궤열차 선로 부근에 있었던 것을 1937년 수인선 개통시 현재의 자리로 옮겨지었다고 한다. 도당은 마을에서 관리를 하고 있으며 주변은 폐기물과 밭으로 되어 있어 들어가기가 불편하지마는 도당 담장 안은 깨끗하게 손질이 되어 있었고 당은 열쇠로 잠겨져 있었다.

고색동은 옛부터 정월 대보름이 되면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는 줄다리기가 벌어지는 곳이다. 특히 고색동의 줄다리기는 전통이 오래되어 1795년 화성을 축조할 때 인근 주민들의 화합을 위해서 버드내(현 세류동) 벌판에서 성안에 사는 양반들과 성밖의 평민들 간의 한마당 잔치로 정월 대보름을 기해서 벌어졌다고 한다. 특히 한창 때는 화성, 태안, 안산, 수원 등 인근 30여 개 마을의 두레패가 참여해서 대성황을 이루었으며 줄만 해도 암줄과 숫줄로 제작이 되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고 한다.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각 동의 두레패가 참가를 하면 그들을 집집마다 나누어서 대접을 했기 때문에 줄다리기가 끝나고 나면 마을의 쌀이며, 간장, 된장 등이 바닥이 날 정도였다고 하니 당시 줄다리기의 규모를 짐작할만하다.

고색동 줄다리기는 줄을 당기고 난 후에 줄을 태우거나 잘라서 액막이를 하는 것이 아니고 줄을 보관했다가 다음해에 보수를 해서 다시 당기고는 했다고 한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고 나면 줄이 굵어져 당길 수가 없어서 새로이 제작을 했으며, 일제 시대에는 문화말살 정책으로 인해서 줄을 당기지 못하게 하자 밤에 횃불을 밝히고까지 줄을 당겼다고 한다.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두레의 중심지였던 고색동 줄다리기는 1986년까지 지속되어 오던 중 잠시 중단이 되었다가 1995년 다시 복원되어서 현재까지 한해도 거르지 않고 계속되어 온 전통의 맥을 잇는 민속놀이다.

이렇게 200년 이상 마을에 전해지는 놀이 문화를 소중히 생각하고 있는 고색동에서는 대도시와 오히려 인접해 있어 젊은이들의 이농현상이 타지에 비해 적고 마을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우리 것을 지키고자 하는 열의가 있어 아직도 마을에 전승되는 놀이와 제의식을 비교적 잘 지켜 가고 있는 곳이다. 고색동의 도당굿은 3년에 한번씩 거행되는데 홀수 해는 제를 지내고 짝수 해는 도당굿으로 열렸다. 도당굿을 할 때는 마을의 주민들이 추렴을 해서 외부에서 만신들을 청배해 정성을 다해 굿판을 펼치던 마을이다.


2. 신위(神位)와 제일(祭日)


고색동 큰말에 있는 당에서 벌어지는 고색동 도당굿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전해지던 마을의 대동굿이다. 음력 9월말이 되면 마을에서 길일을 택해 10월초에 날짜를 잡으면 먼저 주민 중에서 생기복덕을 가려서 제관 1인과 일을 맡아 볼 주비 4인을 선출한다. 제를 지내는 해는 제관들이 당제(堂祭)만 모시고 굿을 하는 해는 금곡동 도뱅이에 사는 화랭이인 코주부와 재인 7~8명이 참가하여서 굿을 했다고 한다.

당안에는 도당신인 당할아버지와 당 할머니, 그리고 한편에는 백마신장을 모셨는데 당집은 붉은 벽돌에 기와를 얹은 1칸 정도의 규모로 깨끗하게 보존이 되어 있으며 당안에는 정면에 당할아버지와 당할머니가 함께 서 있는 탱화를 액자 안에 넣어서 모시고 있고 양편에는 당신(堂神)의 의대를 걸어 놓았다. 왼쪽 벽에는 백마신장의 탱화가 걸려 있고, 정면에는 2자 높이의 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우측 벽 쪽에는 촛대 4기와 촛곽이 쌓여 있었으며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3. 주무(主巫)의 형태 및 전승

고색동 도당굿은 제와 굿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던 곳이다. 홀수 해에는 제를 지내게 되는데 제관은 마을의 주민 중에서 선출하며 선출된 제관은 그 날부터 금기(禁忌)를 지키면서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한다. 금기의 내용은 부정한 일을 하지 않고, 술을 마시지 않으며, 부인과 합방(合房)을 하지 않는다. 또한 비린 것을 먹지 않으며, 상갓집을 가지 않으며, 매일 목욕을 하면서 근신을 하고 있다가 제에 임한다. 제물은 소머리와 과일과 포, 떡을 준비하고 술은 과거에는 담가서 사용했으나 요즈음에는 사다가 쓴다. 짝수 해에 굿을 할 때는 현 금곡동 도뱅이에 사는 화랭이 코주부(본명:이덕만)와 그 일가, 그리고 악사들 7~8명이 들어와서 도당굿을 담당했는데 이덕만은 앉은말의 명인으로 굿은 일반적인 안택굿처럼 진행이 되었으며 경기도당굿에서 나타나는 뒷전의 의딩이는 놀지 않았다고 한다. 고색동의 도당굿은 중단 된지가 50여년 정도 되었다.

현재 고색동의 굿을 담당하던 도뱅이 세습무가인 이종만의 후손들은 다 이주를 해버리고 무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없으며 고색동에 도당굿 이수자인 김운심이 거주하고 있어서 앞으로 고색동의 도당을 맡아 관리를 할 것으로 보인다. 도당의 주무를 맡으며 당 관리는 물론이려니와 초하루와 보름의 치성, 정월 보름 횡수막이 등 마을에서 주민들이 필요시에 치성을 드려야 하며 주민들의 대소사를 점검하야 하는 중임이다. 일반적으로 당의 주무는 바뀌는 것이 아니고 마을에서 이주를 하거나 죽기 전에는 바꾸지 않고 한사람이 관리를 하게 된다. 이는 그만큼 오래 되어야 주민들의 속마음을 알고 정성을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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